서울경제

HOME  >  오피니언  >  

[열린송현] 교원 정치참여 문은 열되 '교실 중립성' 지켜야

■류수노 한성대 석좌교수·前방송통신대 총장
韓교육환경, 정치갈등 영향 여전
학생 학습권 최우선 가치로 삼고
개인 표현과 지도 영역 분리해야

  • 2025-12-10 05:00:24
[열린송현] 교원 정치참여 문은 열되 '교실 중립성' 지켜야
류수노 한성대 석좌교수·전 방송통신대 총장

교원의 정치 참여를 둘러싼 논쟁이 거세다. 교사도 시민이므로 정치적 의견을 표현할 권리를 갖는다는 주장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교사의 직무가 지닌 공적 성격, 학생에 대한 영향력, 학교라는 공간의 공공성은 일반 시민의 권리보다 더 무겁게 고려돼야 한다. 교육이 정치의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은 그 어떤 주장보다 우선한다.


학교는 사회적 권력이 비대칭적으로 작동하는 공간이다. 학생은 교사의 진술을 평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로 받아들이며 교사의 발언에 반론을 제기하기 어렵다. 이런 환경에서 교사의 정치적 표현은 단순한 의견 표명이 아니라 학생에게 사실상 ‘정답’으로 강요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의도와 무관하게 학생의 학습권이 침해되고 교육의 중립성이 훼손될 위험이 존재한다.


물론 과거처럼 교사의 정치 활동을 전면 금지하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표현의 자유와 시민권이 확장된 시대에 교사라는 이유로 모든 정치적 활동을 억압하는 것은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 교사 역시 개인의 시간과 사적 공간에서 정치적 의견을 표명할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그 권리가 교실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까지 동일하게 행사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권리를 확대하되 학생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조정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해외 사례를 근거로 한국도 교원의 정치 활동을 폭넓게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영미권 국가에서 교사의 정치 참여가 제도적으로 보장된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한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 환경은 정치적 갈등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온 특수한 맥락을 가진다. 교원 단체의 조직력과 영향력이 크고, 이념 갈등이 교육 영역으로 확산된 경험도 적지 않다. 학부모가 학교 현장의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문화 역시 존재한다. 해외 모델을 단순히 도입하는 것은 제도 모방에 불과하다.


오늘날 교육 현장은 교권 침해, 학부모 민원, 교사 사망 사건 등으로 인해 심각한 불신의 위기에 놓여 있다. 교원의 정치 활동이 교육적 필요보다 정치적 영향력 확대 시도로 받아들여질 경우 학교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오히려 더 악화할 수 있다. 교육의 불안정성이 지속되는 한 정치 참여 논의가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되지 않도록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교원의 정치 참여를 확대하려면 두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우선 개인의 정치 표현과 교사로서의 직무 영역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사적 시간의 활동은 일정 부분 허용하되 수업과 평가, 학생 지도의 영역에서는 정치적 발언을 철저히 제한해야 한다. 아울러 교실의 중립성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교사의 권리 확대가 교실의 정치화를 초래하고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순간 교육의 신뢰는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손상된다. 정책의 목표는 권리 확대가 아니라 균형 유지여야 한다.


교원의 정치 참여 확대 논의는 시대 변화에 따라 필요한 과정이지만 그보다 먼저 보호해야 할 가치는 명확하다. 학생의 학습권, 교육의 중립성, 학교에 대한 사회적 신뢰다. 정치 참여의 문은 열되 교실이 정치의 영향력으로부터 안전한 공간으로 남도록 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이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교육이 다시 본령을 회복하는 길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XC

시선집중

ad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

[화제집중]

ad

이메일 보내기

보내는 사람

수신 메일 주소

※ 여러명에게 보낼 경우 ‘,’로 구분하세요

메일 제목

전송 취소

메일이 정상적으로 발송되었습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