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잊고 지내던 ‘부부’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나부야 나부야’ 감독 최정우는 “영화가 끝난 뒤, 두 손을 꼭 잡고 나가는 부부의 뒷모습을 보고 싶어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지난 20일 개봉한 영화 ‘나부야 나부야’는 지리산 삼신봉 자락 해발 600m에 자리한 하동 단천마을에서 78년을 해로한 노부부의 사계절을 그린 다큐멘터리로 순박한 애처가 이종수 할아버지와, 미소천사 김순규 할머니의 소탈하지만 아름다운 마지막 7년의 기록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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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주인공인 이종수 할아버지와 김순규 할머니 부부는 2012년 1월에 방송된 KBS 1tv ‘세상사는이야기’ “오래된 연인” 48화 속 주인공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2011년 11월에 두 분을 처음 만난 최정우 감독은 2011년 11월부터 2016년 3월까지 촬영을 해나갔다고 한다. 2017년 12월까지 총 7년에 걸쳐 촬영과 후반작업을 마쳤다. 그 사이에 두 분 모두 고인이 됐다. 해피엔딩을 계획했으나 결국 새드엔딩으로 흐르는 듯 했다.
“ 큰 스크린에서 예쁜 두 분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그 점이 많이 아쉽습니다. 기획 당시에는 두 분이 돌아가실 거라 생각을 하지 못했을뿐더러, 설사 돌아가신다고 하더라도 그 장면을 넣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장례식 장면이 들어간다면 제가 하고자 했던 부부의 이야기 속에 자녀들의 이야기도 같이 들어가게 되거든요. 가족을 배제시키고 좀 더 철저히 두 분의 사랑 이야기를 조명하려고 했어요. 두 노부부를 통해 “부부란 무엇으로 사는가?” 생각해 보는 것이 제겐 화두였으니까요.“
최정우 감독은 가족을 배제시키고 촬영을 이어간 것에 대한 조심스런 입장도 전했다. 행여나 자식들이 노부부를 산골에 방치한 게 아닌가 하는 관객들의 평도 나올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6남매가 효자라 그런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문을 열었다.
“제가 노부부의 모습만 담고 싶다고 했어요. 그 부분은 가족들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눴던 부분이죠. 사실적으로 6남매가 모두 효자 효녀세요. 아랫 마을에 사는 자식들이 장작이나 필요한 물품을 늘 챙겨주세요. 촬영가서 보면, 늘 전화가 와서 문안 인사드리는 것도 다 옆에서 봤죠. 그래서 한편으로 이런 생각을 했죠. 원래 자식은 부모님 뒷 꼭지를 보면서 자란다고 하는데, 그 부모의 그 자식이구나. 정말 효자분들이세요. 그게 팩트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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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 할아버지와 김순규 할머니 부부는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부부다. 7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서로를 향한 변치 않는 애정과 감사하는 마음을 늘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최감독은 “영화 속 주인공 이종수 어르신으로부터 사람과 사람간의 ‘관심과 배려’가 무엇인지 엿보는 것. 그것이 ‘나부야 나부야’의 관람 포인트이다”고 전했다.
“저도 처음에 그런 생각을 했어요. ‘쉽게 볼 수 없는 부부’의 모습이다고. 노인이 되면, 아내가 남편을 보필하는 경우를 많이 봤잖아요. 그런데 이종수 할아버지는 거꾸로 된 거니까요. 제가 수많은 노인들의 모습을 촬영 해왔는데, 그것도 다른 지역도 아니고 경상도에서 만난 부부라 더 충격이었어요. 그 점이 처음부터 흥미롭게 와 닿았어요. 이종수 어르신의 젊었을 때 모습은 저도 정확히 알진 못해요. 다만 언뜻 언뜻 하시는 말씀으로 유추해보면, 젊어서는 그럭저럭 살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정’이 두터워졌다는 걸 알 수 있어요.‘사랑’ ‘정’이 두터운 정이 되기까지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어요. 그게 바로 관심과 배려였다는 걸요.
”
김순규 할머니의 애교와 웃음 역시 이들 노부부의 사랑과 정을 이어주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종수 할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대신해 요리, 설거지, 빨래, 심지어 요강 비우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또한 김순규 할머니 역시 이에 대한 고마움을 아낌없이 표현하며 보는 이를 미소 짓게 한다. 노부부의 모습은 최정우 감독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다고 했다.
“촬영을 하면서 내 성찰도 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할머니가 정말 사랑스러워 보이고 예뻐 보이잖아요. 그렇게 만든 사람이 바로 할아버지 아니었을까요. 만약 할아버지가 윽박지르고 했다면, 할머니에게서 저 미소가 나왔을까. 이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두 분 모습을 보면서, 저도 우리 집에서 아내에게 코스프레(?)를 많이 했어요. 죽음 앞에서 세상 하직하는 느낌으로 발톱 깎아주는 신이 있는데, 저 역시 해봤어요. 고마운 분들이죠.”
대청마루에 앉아 파리를 쫓으며 여유로운 한 때를 보내고 있던 노부부의 “봄이 좋은가, 가을이 좋은가” 대화 장면은 이번 영화의 백미다. 이종수 할아버지는 김순규 할머니에게 대뜸 “봄이 좋은가, 가을이 좋은가”를 묻는다. 하지만 귀가 많이 어두워진 김순규 할머니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천진난만한 표정과 함께 “나이가 몇 살이냐고?” 라고 되물으며 웃어 보인다. 이에 굴하지 않고 할머니가 알아들을 때까지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이 장면은 우연처럼 생긴 장면이란다. 뜨거웠던 여름이 끝나고 살랑 사랑 바람이 부는 가을 초입, 최감독이 할머니에게 ‘봄이 좋으세요. 가을이 좋으세요’라고 물었는데, 말귀를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고.
“할머니 귀가 잘 안들리는지 모르고, 제가 우연히 질문을 드렸어요. 그랬더니 할아버지께서 ‘할매가 영 못들어’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럼 할아버지가 직접 할머니한테 ‘봄이 좋으세요. 가을이 좋으세요’ 여쭤봐주세요. 라고 제안했어요.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장면입니다. 놀랐던 건 보통 한 두번 이야기해서 못 알아들으면 쉽게 포기하기 마련인데, 절대 그러지 않으셨어요. 5번 이상 물어보시면서 알아들을 때까지 이야기를 하셨어요. 포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 저건 단순한 ‘사랑’으로 되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어요. ‘사랑’이 ‘정’이 되기까지 부부의 첫걸음이라고 하면, 그 다음은 두터운 정으로 이어져야 하는거죠. 관심과 배려가 없으면 절대 두터운 정으로 이어질 수 없죠. 저는 다큐는 100프로 연출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의인데, 그렇게 우연처럼 그 장면이 탄생하게 됐어요.”
순도 100퍼센트 다큐멘터리 ‘나부야 나부야’에서 그마나 연출의 손이 닿은 장면이라면, 조그마한 눈사람이 나오는 신이다. 눈사람 형상을 만들 수 있게 조금 도와줬을 뿐인데도 최감독은 솔직하게 그 사실을 털어놨다.
“‘나부야 나부야’의 연출이 조금이나마 들어간 건 ‘눈사람’이 나오는 신입니다. 제가 할아버지한테 ‘예전에 할머니에게 눈사람 만들어준 적 있으세요? 할머님이랑 같이 만든 적 있나요?’ 라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바로 ‘있지’ 하시면서 눈사람을 만드셨어요. 그런데 눈이 잘 안뭉쳐졌어요. 성인이 해봐도 잘 안 뭉쳐지는 하얀 가루에 가까웠거든요. 그래서 저도 눈을 뭉치는 걸 도와줬어요. 코도 달고, 눈도 조금 붙여주고 했죠. 연출은 그 정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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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차 베테랑 다큐멘터리스트 최정우 감독은 2005년 경남 MBC ‘얍! 활력천국’에서 마을 어르신들이 직접 출연해 동네 시트콤을 만드는 코너였던 ‘우리동네 특파원’ 담당으로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KBS 대구총국 휴먼다큐 ‘사노라면’, KBS 창원총국 휴먼다큐 ‘세상사는 이야기’, KBS 창원총국 ‘우문현답’ 등의 프로그램을 맡으며 어르신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시니어 전문 PD’로 통했다.
최정우 감독은 “이종수 할아버지가 설거지를 하시면서 “할멈이 어찌나 추위를 타는지… 그래서 내가 많이 해줘 라고 말씀하세요. 그게 내외간 정 아닌가” 우리가 글로 보는 성현들의 지혜와는 또 다른 실제 살아있는 경험담이고 배려 있는 행동인 거잖아요.“라며 ”노인 한 분이 세상을 떠나면 도서관 열 개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라고 밝혀 노인들의 삶에 축적된 지혜와 생각, 그리고 역사를 카메라에 담아내고 있는 소신을 엿보게 했다.
‘나부야 나부야’는 천천히 입소문을 따라 반향을 일으키고 있었다. 울산 여성 포럼 상영회에선 실제 결혼한지 40년 된 부부가 “오늘부터 절대 각방을 쓰지 않겠다”고 소감을 전했다는 에피소드도 전했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결혼한지 40년이 넘은 60대 분께서 30년 넘게 각방을 쓰고 있는데 오늘 영화를 보고 각방을 쓰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발언을 했어요. 30년이 됐든 하루가 됐든 부부의 연을 맺은 이들이 한방을 쓴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대한민국 부부 모두가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다는 게 좋았어요. 그 때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나부야 나부야’ 영화의 가치는 이런거구나. 어느 누군가 잠시 생각을 해서 어떤 전환점이 된다는 건 대단한 거잖아요. ”
“PD들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쾌감은 바로 이것 아닐까요. 방송을 기획 해서 주변이 움직이고, 나중에는 사회가 움직일 수 있다는 거요. 최고의 가치잖아요. 결혼을 앞둔 사람들이든, 오랜 기간 부부로 살아오고 있는 사람들이든, 저희 영화를 보고 작심 3일이 될 지라도 한번 쯤 생각이 전환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
‘나부야 나부야’ 러닝타임은 한 시간 보다 조금 많은 65분이다. 최감독은 영화 러닝타임보다 관객과의 대화 (GV)시간이 더 긴 경우가 많다는 에피소드도 전했다. 그러면서 처음에 나왔던 분량은 80분이었는데, 신들을 정리하고 나니 최종적으로 65분가량이 나왔다고 했다. . “65분 러닝타임이 신의 한수구나”란 말까지 나왔을 정도.
“7년의 긴 시간도 65분으로 압축될 수 있는 게 우리의 삶이라고 생각해요. 두 분의 노년의 7년의 시간을 기록하면서, 7년이 길 것 같았는데 막상 편집을 하고 나니 65분밖에 안 됐어요. 우리네 삶도 잠자는 날, 아픈 날 등을 평생 더하면 무려 40년이나 된다고 하더라.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생각처럼 그렇게 많지 않잖아요. 사람이 늙고, 또 늙으면 죽는다. 이 평범한 진리를 잘 몰라요. 영원히 살 것 같이 행동하잖아요.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이 무색할 만큼 노 부부의 삶이 영화 속에서 펼쳐져요. 1년 4계절 변화가 빨리 지나가죠. ‘우리 인생이 짧구나’란 생각이 들어요. 65분이 아쉽다고 70분을 만들려고 애도 쓰지 말자. 이게 바로 ‘사람 사는거구나’ 란 생각을 해요. 이 영화를 통해 인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최정우 감독은 ‘노인 시리즈’ 다큐멘터리 영화를 기획중이다. 첫번째가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 ‘ 나부야 나부야’ 였다면, 두 번째는 치매에 걸린 노부부의 이야기를 담을 예정. 2탄은 40프로 가량 촬영이 진행이 됐다고 한다. 3탄은 아직 고민 중이란다. 그에게 영화감독으로서 커리어를 넓히고 싶은 욕심은 없었다. 단지 어르신들에게 받았던 사랑을 돌려주고 싶은 마음에 이번 시리즈를 기획했다고 했다.
“‘노인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이유를 물어본다면, 14년동안 그 분들에게 전 받기만 했으니까요. 독립 PD 활동을 하면서, 그 분들 덕분에 생활을 유지했어요. 이젠 그분들을 위해 뭔가를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방송으로 찍거나 영화로 해서 재조명하는 것 뿐이니까요. 그 도움 밖에 못 드려 죄송하죠. 제가 대기업 손자라면 더 큰 것을 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그 분들은 그런 건 안 바랄 것 같아요. 그분들의 모습 그대로를 담아내고 싶어요. 어떻게가 아닌 ‘무엇’을 담아내는가가 중요하잖아요. ”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