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등진 여자 ‘백상아’로 분한 한지민은 세상이 버린 자신과 닮은 아이를 만나게 되고,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 참혹한 세상과 맞서게 된다. 아동 학대 사태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영화 ‘미스백’ 주인공 한지민을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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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민은 이번 작품을 선택한 게 “배우로서 변신이나 도전의 기회는 아니었음”을 밝혔다. 그는 왜 ‘미쓰백’을 선택했을까.
“초점을 맞춘 건 파격변신이 아니었어요.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상아와 지은이라는 인물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 어느 곳, 곳곳에 모르고 지나쳤거나 외면했을 수 있는 자리에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던 백상아와 김지은, 두 사람에 대해 느껴지는 책임감과 미안함이 있었어요. 두 캐릭터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11일 개봉한 ‘미쓰백’은 세상을 등진 여자와 세상이 버린 아이의 만남을 그린다. 작품의 매력 포인트는 불행과 절망의 끝에서도 희망은 꺼지지 않음을 치열하고 온기있게 담아낸 점이다.
그는 매체에서 ‘아동학대’ 뉴스를 접할 때마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가슴이 아프지만 막상 그때 뿐이고, 애써 바라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음 역시 고백했다. 실제로 작품을 직접 쓰고 연출한 이지원 감독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 보였던 이웃집 아이의 눈빛을 외면한 적이 있다는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집필했다.
보호받지 못했던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란 장르로 보여주면 의미있겠다는 생각에 보자마자 하기로 결정했다는 한지민. 그는 “ 백상아를 내 안에 들어오게 하고 싶었다”는 일념 하나로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다. 그렇게 백상아와 김지은의 ‘우정과 연대’의 의미가 차곡 차곡 쌓여갔다.
“ 시작 단계부터 날이 서있는 인물이라서 백상아란 인물이 어떻게 살았는지 하나 하나 쌓아가지 않으면, 그 인물을 표현하기 버거울 것 같았어요. 상아가 이렇게 살아가게 된 과거 이야기에 공감하게 됐고, 그 점을 쌓아 가는데 오래 걸렸어요. 그 다음이 의상, 메이크업 등 외형적인 부분에 변화를 줘 이 인물의 삶을 보여주고자 했어요.”
“ 촬영 초, 중반보다 후반이 편했던 것 같아요. 촬영 회차가 쌓이면서 직접적으로 캐릭터의 목소리를 내고 표현을 하면서 상아스러움이 들어가는 것 같았거든요. 쌓이는 것들이 있어서 뒤로 갈수록 상아가 더 편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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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선 지금까지 보지 못한 한지민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할 수 있다. 한지민이 분석한 ‘백상아’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늘 삐뚤어진 사람이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얼굴을 찡그리게 되더라”고 털어놨다. 감정에 집중하니 외형도 달라졌다. 안 쓰던 근육을 쓰다 보니 주름이 거기에 맞게 생겼다. 날 것의 느낌을 지닌 백상아는 그래서 더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상아는 사람들과 대화도 제대로 할 줄 모르고 심지어 시선도 똑바로 보지 못하는 친구에요. 상아는 부모가 준 이름 자체도 싫었겠죠. 그래서 ‘미쓰백’이라 불리는 게 더 편했을 거다. 그런 그녀에게 지은이가 눈에 들어온 거다. 너무 자신과 닮아서 보기는 싫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느껴지는 연대감으로 마음이 계속 열리지 않았을까요.”
한지민과 호흡한 아역 김시아는 6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스크린 주역으로 발탁됐다. 한지민은 ‘백상아’가 지켜주고 싶은 아이 ‘지은’을 연기한 아역 ‘김시아’에 대해 “연기가 처음이었지만 풍부한 감정과 의젓한 태도로 연기해 임해주어 고마웠다”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어린아이 같지 않은 우직함을 지닌 대배우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동학대 문제는 내 개인 스스로도 분노가 커요. 함께 호흡을 맞춘 김시아가 잘 해냈어요. ‘지은이는 배가 고픈 아이’라면서 밥도 안먹고, 씻지도 않고, 손톱도 길러왔던걸요. 어머니가 시키는 건가 싶어서 봤는데, 어머니는 ‘힘들면 안해도 돼’ 하는데 스스로 하는 거더라. 천상 배우같았어요. ‘대배우’죠. ”
“시아는 지은이로 있기 위해 나보다 더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었던거죠. 내가 시아에게 뭔가를 줘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필요없었어요. 시아의 에너지를 온전히 받기만 하면 되는 현장이었으니까요. 제가 시아에게 의지했던 순간도 있었고 반성을 많이 하게 됐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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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란 소재를 주제로 차가운 세상 속에서도 피어나는 따뜻한 희망을 전하는 ‘미쓰백’ 영화를 놓고 누군가는 여타의 영화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지민은 “이런 영화가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드러냈다.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건 ‘공감하는 일’이고 이런 노력이 결국 사회에 작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게 한지민의 지론이다.
“관심의 문제가 사회적인 문제를 바꿀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얻고 이를 위해 연기를 했어요. 사회변화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작품에 참여했어요. 배우라는 일이 결국 ‘공감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배우가 공감해야 인물의 전사를 쌓아갈 수 있어요. 사실 노희경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배우에게, 또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공감’이라는 걸 절실하게 느끼게 됐어요. ‘공감’에 대해 생각 하다보면, 사람 뿐 아니라, 세상에 대해 알아갈 수 있어요. 세상에 대해 공감하고 분노하고 인지할 수 있게되는거죠.”
“‘미쓰백’을 함께하면서 백상아로서 힘들기도 했지만, 촬영이 다 끝난 뒤 혼자 울었던 기억이 나요. 마지막 엔딩은 촬영을 다 끝내놓고도 잔상이 계속 남을 정도로 달랐거든요요. 그렇게 돌아와서 마주한 백상아와 지은이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혹시 지은에게 인사를 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게 나은 게 아닐까. 등 여러 생각들이 들었어요. ‘이런 나라도 같이갈래?’묻고, 대답하는 지은이를 보고 마냥 행복하지 않아요. ‘이런 나라도’...이게 백상아의 솔직한 마음인거죠.
만약 우리가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 저 아이들이 고통 받지는 않을 텐데.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결국 그 아이들에게 생기는 문제는 어른들과 사회의 책임이라고 봐요. 영화를 보시고 아동학대의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고, 저희 영화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자, ‘희망’의 영화가 되었음 해요.”
한편, 한지민은 사전제작 드라마로, 내년 1월 방송을 목표로 준비 중인 JTBC 새 드라마 ‘눈이 부시게’(김석윤 연출, 가제)로 안방 극장을 찾아 올 예정이다. 남자 주인공으론 배우 남주혁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