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변호인’ ‘택시운전사’ 등 통해 대한민국 최초 쓰리 천만 배우로 등극한 송강호는 매 신작 개봉을 앞두고, 그에게 쏠리는 기대를 두고 “흥행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고르지 않는다. 그저 작품이 요구하는 것을 찾으려고 노력 할 뿐이다”고 말했다. 배우 송강호는 ‘마약왕’을 선택한 이유를 “시대가 낳은 괴물 같은 인물을 통해 우리가 지나왔던 한 시대를 조명해볼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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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개봉한 영화 ‘마약왕’(감독 우민호 배급 쇼박스)서 송강호는 극중 하급 밀수업자에서 전설의 마약왕으로 성장하는 이두삼 역을 연기했다.부산의 하급 밀수업자로 생활하다가 마약 제조와 유통에 눈을 뜨며 마약왕으로 거듭나고, 마침내 꿈에 그리던 권력의 중심에 서서히 다가서는 인물이다. 영화의 초중반까지는 오래 전에 출연했던 ‘초록물고기’ ‘넘버3’ ‘살인의 추억’ 등에서처럼 유쾌한 분위기를 볼 수 있고, 후반부에는 송강호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오랫동안 소시민의 대명사처럼 여겨진 송강호의 새로운 면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그는 “적절한 시기에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반가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송강호는 머리부터 발가락 끝까지 오감을 작동시켜야 하는 마약 연기가 핵심이 아닌, “이두삼이라는 인물의 10년의 걸친 흥망성쇠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기 위해 고민했다”고 했다. 작품이 요구하는 건 ‘마약으로 피폐해지는 한 인간의 영혼‘이었다. 그렇게 이두삼이라는 인물의 본질과 욕망, 집착, 파멸로 이어지는 굴곡진 인생이 ‘마약왕’ 속에 제대로 담겼다.
“마약에 취한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흔히 세포가 살아난다고 하지 않나. 책 등을 참고하긴 했지만 일단 내 생각대로 밀어붙였다. ‘마약왕’은 한 인간의 욕망부터 파멸까지를 통해 현대인이 살아가는 모습을 반추하게 되는 그런 영화이다. 어느 선에서 무너지고 그러다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빠져버리는 인간의 모습, 알면서도 권력과 쾌락을 놓지 못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했다.”
파란만장한 이두삼 인생의 새옹지마와 희로애락이 담긴 시나리오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70년대를 집약한 인물 ‘이두삼’으로의 변신은 베테랑 배우로서도 상당한 도전이었다. 우민호 감독의 전작 인 ‘내부자들’을 기대하는 관객이라면 익숙한 구조와는 달라 배반감을 느낄 수도 있다. 송강호 역시 이를 예상하고 있었다. 그는 “논란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야깃거리가 많은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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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감독의 ‘내부자들’이 기승전결이 있어서 상자를 여닫는 일반적인 구조라면 ‘마약왕’은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구조다. 나중에는 주인공의 내면으로 들어가 버린다. 어떤 게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낯설기 때문에 배반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논쟁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28년 간 묵묵히 배우의 삶을 걸어온 송강호는 “배우는 외롭고 고통스러운 직업”이라고 했다. 연기를 할 때 결국은 혼자서 모든 걸 다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를 늘 자극시키는 건 ‘좋은 작품이다. 좋은 작품을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작품을 만들어냈을 때의 희열, 성취감이 극복할 수 있는 힘이다. 그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알고 싶어 하는 이야기, 새로운 방식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배우로서의 욕심을 끝까지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송강호는 내년에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 조철현 감독 ‘나랏말싸미’로 관객을 차례로 만난다. ‘천만 배우’ 역시 매 작품을 끝내고 시행착오를 겪는다고 했다. 시행착오를 시행착오로만 흘려보내지 않는 것. 그것이 현재의 그를 만든 것은 분명했다.
“출연한 작품 중 1000만이 넘었다고 해서 아쉬움이 없는 아니다. 관객들에게 저평가를 받았다고 해서 작품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내 능력이 부족했고,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 것이다. 이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생사가 좋은 길만 있는 건 아니지 않나. 배우의 길 역시 마찬가지고 시행착오는 겪기 마련이다.”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