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1970년대 트로트의 황금기를 이끈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78)가 데뷔 60주년을 맞은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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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1일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 조선호텔 서울에서 이미자 데뷔 60주년 기념 음반 및 신곡 발표 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1941년 서울에서 출생한 이미자는 1958년 HLKZ라는 TV의 콩쿠르 프로그램 ‘예능 로터리’에서 가요부문 1등을 하며 작곡가 나화랑 씨의 눈에 띄어 1959년 19세에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했다. 이후 ‘서울 아가씨’(1963년), ‘동백 아가씨’(1964), ‘섬마을 선생님’(1966), ‘빙점’(1967), ‘여자의 일생’(1968), ‘기러기 아빠’(1969) 등 히트곡들을 내 놓았다.
이미자는 “여기 계신 분들보다 여러분 부모님들 사랑이 컸기에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싶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1960년대 초 가장 바빴는데, 돌아보니 당시 너무나 살기 힘들었던 시대를 부모님들이 참고 견디며 애쓰셨기 때문에 오늘날 잘사는 나라가 됐다. 그 어려운 시대에 제 노래와 목소리가 잘 맞아서 큰 사랑을 받은 것 같다”고 60년 노래 인생을 돌아봤다.
그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 순간은 ‘동백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 등 ‘3대 히트곡’이 금지곡으로 지정 됐을 때였다. 그는 “이 당시 경험은 나에게는 목숨을 끊어놓는 느낌이었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금지곡이 돼도 어디에선가 불려졌던, 국민들의 끝없는 사랑은 그에게 큰 힘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노래를 사랑해주신 분들이 이 노래를 한사코 불러주셨다. 결국 그 힘으로 시련을 이길 수 있었고, 지금까지 버틴 원동력이 된 것 같다.”
이미자의 60년 음악 인생을 이야기하며 빼 놓을 수 없는 일은 또 있었다. 그는 “큰 사랑을 받고 가장 기뻐해야 했을 때조차 늘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고 말했다.
“제겐 항상 꼬리표가 있었어요. ‘이미자 노래는 질이 낮고 천박하다’, ‘상급 클래스 사람들에겐 창피하다’, ‘술집에서 젓가락 두드리며 부르는 노래’라는 꼬리표가 있었다. 그런 소외감에서 힘들었지만 잘 지탱해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부심도 가집니다.”
한때는 서구풍 노래로 바꿔볼까 하는 유혹도 있었지만 참고 견뎠다고 했다. 그는 “내가 정말 절제하면서 잘 지내왔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렇듯 전통 가요의 뿌리를 지켜온 이미자는 60주년 기념 앨범 ‘노래 인생 60년 나의 노래 60곡’을 지난 19일 발매했다. ‘감사, 공감, 순수’로 나뉜 3장의 CD에는 60곡이 담겼다. 그중 10여곡은 실제 공연 때처럼 오케스트라와 함께 라이브로 한 번에 녹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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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1에는 60주년 신곡 ‘내 노래, 내 사랑 그대에게’를 비롯해 50주년 곡 ‘내 삶의 이유 있음을’, 45주년 곡 ‘내 영혼 노래가 되어’ 등이 실렸다. 두 번째 CD에는 ‘동백 아가씨’, ‘흑산도 아가씨’, ‘기러기 아빠’, ‘섬마을 선생님’ 등 국민적인 사랑을 받은 영광의 노래들이 채워졌다. 이미자는 “기존 곡을 다시 불러 녹음한 것도 있어 20~30대부터 70대까지 목소리의 변화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10년 전 50주년 음반이 마지막이 아니겠나 생각했지만 결국 지금의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드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기념 음반을 만들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미자는 현 음악 풍토에 아쉬움을 드러내며, 가요의 뿌리가 남겨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요의 뿌리가, 전통이 사라지는 게 너무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슬프면 슬픔을, 기쁘면 기쁨을 전달해주는 것이 가요”라며 “가요의 뿌리가 사라지지 않으려면 가사, 노랫말이 중요하다. 제가 이 세상에 없더라도 ‘황성 옛터’ ‘목포의 눈물’ 등 이 곡들이 계승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고 밝혔다.
한편, 지금까지 560장이 넘는 앨범을 발표하고 60주년을 맞이한 이미자는 5월 8~10일 50주년 공연을 열었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기념 공연을 연다.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