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9일 개막한 창작뮤지컬 ‘루드윅 : 베토벤 더 피아노’(연출 추정화, 제작 과수원뮤지컬컴퍼니)는 천재 음악가 베토벤이 아닌 우리와 같은 한 사람으로 존재의 의미와 사랑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고뇌했던 인간 베토벤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인터뷰’로 신인연출상을 수상한 추정화 연출의 또 다른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이번 작품은 “천재 이야기가 아니다” 며 “천재도 자신 앞에 펼쳐진 인생 앞에선 초짜다. 천재 베토벤도 ‘공사 중’인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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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베토벤의 고뇌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실수할 수 있고 잘못하고 허점을 보이고, 한숨과 후회의 날을 보내는 베토벤의 일생이 우리 각자의 삶에 녹아있다”고 말했다.
추정화 연출은 화려한 모차르트 음악보다는 ‘폭풍 같이 다가오는’ 베토벤의 음악이 좋았다고 했다. 그렇다고 클래식 마니아는 아니란다. 추 연출이 관심을 보였던 지점은 ‘베토벤이 왜 조카 카를에게 집착을 보였을까’ 그 지점이다. 그렇게 베토벤과 조카 카를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새롭게 ‘베토벤’ 관련 뮤지컬이 탄생했다. ‘베토벤’은 조카를 후계자로 키우려고 했는데 ‘카를’은 음악을 원하지 않았고, 자살시도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품 속에선 ‘부모가 자식을 품는다’ 는 것이 무엇인가란 화두 역시 담겨 있다. 추 연출은 베토벤과 조카 카를의 관계를 ‘인생’이란 코드에 담아냈다. 그 속에 누구나 ‘초짜’인 시행착오 인생이 펼쳐진다.
“베토벤이 카를을 대하는 모습에서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것, 또 자식이 부모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천재 베토벤도 고난이 있었다는 게 팩트이다. 그 안의 디테일들은 상상이 보태졌다. 그 고난 속에서 그가 어떻게 역경을 뛰어넘으려고 했는지를 상상했다. 그도 한숨과 후회의 한 자락이 남는구나란 생각이 들자 이야기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고1 딸을 키우고 있는 추정화 연출은 자신 역시, 베토벤과 같은 고민과 후회를 했음을 털어놨다. 사랑하는 마음이 앞서, 딸의 진짜 속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 그는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데, 내 자식이다는 생각이 앞서서 실수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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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부모이고, 자식이다. 딸을 키우면서 사랑하는 마음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가 있더라. 딸 아이가 사춘기가 와서 문을 잠그고 혼자 있고 싶어 할 때면, 나 역시 말이 세게 나갔다. 문득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란 생각이 들었다. 내 딸 아이도 한 명의 인간이고 나를 통해 생명을 얻었을 뿐인데...그 사실을 순간 순간 잊어버리더라. 좀 더 내려놓았다고 할까. 그러고 나니 나도 행복하고 그 아이도 행복했다. ‘루드윅’ 역시 그런 생각들이 담겨있다.”
추 연출의 딸 역시 흥미롭게 본 뮤지컬이다. 추 연출은 “모두가 누군가의 자식이다” 라며 “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가 있는 뮤지컬이다”고 귀띔했다.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 등 3명의 베토벤이 한 무대에 선다. 극 중 음악을 넘어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음악의 거장, 어린 시절 트라우마 속에 갇혀 가슴 아픈 청년시절을 보낸 ‘루드윅’ 역에는 초연 멤버 김주호, 이주광이 뉴캐스트로는 서범석, 테이 배우가 출연한다. 이어 꿈도 피아노도 삶도 모든 것을 부정하던 시절, 자신의 재능에 대한 의심과 들리지 않는 괴로움의 몸부림 치는 청년 ‘루드윅’ 역에는 초연 멤버 강찬, 박준휘와 뉴캐스트 이용규, 조환지 배우가 함께한다.
피아노 라이브 연주로 무대의 흐름을 이끌어가며 직접 녹음한 웅장한 오케스트라 연주는 베토벤의 머리 속 흘러나오는 음악으로 관객들에게 이질감 없이 전달한다. 특히 이번 시즌 공연에서는 세 곡의 넘버가 크게 수정되어 눈길을 끈다. 넘버 ‘제발’은 청년 루드윅이 마리를 떠나 보내면서부터 시작되는 고통을 음악적으로 해석해 담았으며, ‘LESSON’은 어린 카를의 넘버로 귀여움을 한껏 극대화해 보여주는 곡으로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최고의 선택’은 넘버 ‘제발’의 리프라이즈 곡으로 마리가 발터를 위해 최고의 선택한 것처럼 루드윅 역시 카를을 위해 최고의 선택을 하겠다는 내용을 담아 선율적으로 아쉬웠던 부분을 수정해 눈길을 끈다. 이외에도 아역 배우 차성제의 베토벤 월광 3악장 피아노 솔로 곡이 추가됐다.
루드윅에게 영감을 주는 여성으로 등장하는 ‘마리’ 역시 이번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베토벤의 음악에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고 믿으며, 당시 남성들의 영역이었던 건축가에 도전하는 여주인공 ‘마리’ 역에는 오리지널 캐스트 김소향, 김지유, 김려원이 뉴캐스트로 권민제(선우)가 캐스팅됐다.
추 연출은 루드윅의 마리야말로 자신이 근본적으로 좋아하는 여성 캐릭터라고 밝혔다. 물론 다른 한편으론 그 시대 ‘꿈’이라는 장애를 가진 여자이기도 하다.
추정화 연출은 “베토벤과 대등한 힘을 갖고, ‘꿈’이라는 장애를 뚫고 꽃길이 아닌 가시밭길을 택해서, 꾸역 꾸역 씩씩하게 걸어간 여자이다”고 소개했다. 그 속에선 추정화 연출의 뜨거운 의지가 읽혀지기도 했다.
“베토벤은 귀가 멀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마리는 여자가 대학에도 갈 수 없었고 선거권도 없었던 시대를 살았다. 하지만 건축가란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자기 길을 걸어갔다. 제가 추구하는 인간상이자 제가 되고자 하는 인간상이다. 여자가 여자로서 소리를 내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장애가 있을지라도 꾸역 꾸역 내 이야기를 하면서 가야 한다고 본다.”
마리와 함께 베토벤을 찾아온 천재 음악 신동 ‘발터’ 역으로 등장하는 초연 멤버 차성제와 뉴캐스트 이시목의 등장 역시 반갑다. 추정화 연출을 비롯한 함께하는 배우들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추 연출은 “아역배우가 아닌 정말 동료 배우 느낌이다” 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에게서 기운을 많이 얻고 있다. ‘전 연기가 간질 간질해요’ 라고 말하는데, 그 말이 진짜지 않나. 보석 같은 그들의 반응에 연습실 공기가 달라지고 전체 배우 톤이 달라진다. 어린 배우들과 함께 한다는 게 쉽지 않은 선택이라고 주변에서 말했는데, 꼭 함께하고 싶었다. 정말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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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정화 연출은 이번 작품은 “‘루드윅’은 어려운 작품이 아니다” 며 “천재 베토벤을 상상하고 오면 실망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와 맞 닿아 있는 이야기이다”고 애정을 담아 말했다. 우리가 살면서 겪었던 수많은 아픔과 기쁨, 고통, 좌절, 후회와 회한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뮤지컬이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좌절의 시기가 있을 거고 장애가 있을 텐데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다른 삶을 살게 된다. 가정의 달을 맞이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엄마 마음은 이랬는데, 네 마음은 이랬구나 라면서 모녀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음 좋겠다. 그동안 뮤지컬을 접하지 않았던 분들도 오셔서, ‘대학로 뮤지컬이 이렇구나’라는 걸 느끼고 가신다면 좋겠다.”
뮤지컬 ‘루드윅 : 베토벤 더 피아노’는 오는 6월 30일까지 드림아트센터 1관에서 공연된다.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