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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군수 살던 저택이 브루어리·게스트하우스로

[고병기 기자의 진화하는 도시 이야기]
■가장 광주다운 '동명동'의 변화
1990년대 초까지 지도층 거주 부촌
한옥부터 고급 주택·적산가옥까지
100년 역사 품은 옛 건물들 그대로
특성 살려 카페 등으로 하나둘 탈바꿈
쇠퇴하던 원도심 재발견...활기 되찾아

  • 고병기 기자
  • 2020-02-21 17:35:17
  • 기업
회장·군수 살던 저택이 브루어리·게스트하우스로
과거 남광토건의 창업주가 살던 주택. 지금은 무등산 브루어리의 맥주 양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진제공=윤현석 컬처네트워크 대표

회장·군수 살던 저택이 브루어리·게스트하우스로
과거 남광토건의 창업주가 살던 주택. 지금은 무등산 브루어리의 맥주 양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진제공=윤현석 컬처네트워크 대표

프로야구단 기아타이거즈(옛 해태타이거즈)가 우승을 밥 먹듯 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때 ‘해태 왕조’라고 불릴 정도로 우승을 자주 하다 보니 연고지 광주는 야구의 도시로 주목을 받았다. 특히 우승 후 광주 중심지를 돌며 벌이던 카퍼레이드는 시민들의 기억 속에 여전히 뚜렷하게 남아 있다. 당시 기아타이거즈가 카퍼레이드를 할 때 꼭 지나던 장소 중 하나가 광주 도심 동구에 위치한 금남로다. 대통령 선거철이 되면 대선 후보들이 광주를 찾아 꼭 들르는 곳 중에 하나도 바로 금남로다. 금남로는 옛 도청 건물과 총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전일빌딩 등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현장이기도 하다. 이처럼 금남로는 광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소다. 광주 외의 지역에 사는 이방인들에게는 금남로가 곧 광주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느 지방 도시와 마찬가지로 광주도 한때 중심지였던 원도심이 빠르게 쇠퇴하고 있다. 원도심의 중심인 금남로가 위치한 광주 동구의 인구는 매년 줄고 있다. 동구는 지난 19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광주의 행정·경제·정치·유통·교통의 중심지였지만 이제는 그 기능을 모두 다른 곳에 뺏기면서 사람들이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동구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도청과 시청도 오래전에 자리를 옮겼다. 지금은 옛 건물만 남아 화려했던 과거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동구 인구는 19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15만명이 넘었으나 지난해 말 기준 9만8,500명으로 줄었다. 광주의 다섯 개 구(동구·서구·남구·북구·광산구) 중에서 인구 10만명이 채 안 되는 구는 동구 하나뿐이다. 40만5,000여명으로 가장 인구가 많은 신도시 광산구의 4분의1도 채 안 된다. 광주 전체 인구는 1990년대 초반 120만명 수준에서 지난해 말 기준 145만명으로 늘어나며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광주다운 풍경을 지닌 지역은 광주가 커갈수록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동수의 산업, 문화, 사회적인 역할이 작아지면서 사람들이 떠나갔고 이로 인한 고령화·노후화·슬럼화는 광주 원도심의 큰 고민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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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동에 위치한 고급 주택. 잘 관리된 수목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고병기기자

그랬던 광주 동구에 최근 몇 년 사이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특히 가장 광주스러운 풍경을 간직한 동네 중 하나인 동명동을 중심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나면서 원도심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다시 잦아지고 있다. 동명동은 원래 부촌으로 유명한 동네였다. 인근 도청이나 시청 등에 근무하는 고위 공무원, 금남로에 위치한 은행 등에서 일하는 금융인, 충장로에 터를 잡은 상인들이 거주하는 고급 주거지로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광주의 가장 부자들이 사는 동네로 유명했다. 서울로 치면 연희동과 비슷한 특색을 지닌 동네다. 광주 토박이인 윤현석 컬처네트워크 대표는 “동명동은 광주에서 최초로 계획된 마을”이라며 “권력과 경제력을 지닌 사회 지도층이 사는 지역이다 보니 오래된 동네지만 차가 다닐 수 있도록 도로 폭을 넓게 설계하는 등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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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동에 위치한 적산가옥. 동명동은 일제시대 때 일본인들의 주거지로 조성됐다. /사진제공=윤현석 컬처네트워크 대표

실제 동명동에는 지금도 부촌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한 예로 동명동 주택가를 걷다 보면 수십 년 동안 정성 들여 가꾼 큰 수목들이 쉽게 눈에 들어온다. 아울러 동명동은 광주의 시대별 주거 변화를 관찰할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동명동은 일제시대인 1920~1930년대부터 일본인들이 거주하기 위해 조성된 마을로 100년 가까운 역사를 품고 있다. 한옥부터 고급 단독주택, 빌라, 적산가옥 등 시대별 특징을 고스란히 담은 다양한 형태의 주거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최근 들어 동명동에 멋진 카페와 식당들이 하나둘씩 생겨나면서 주목받기 시작한 이유 중 하나도 동명동이 오랜 세월 동안 형성된 주거지의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연희동이나 연남동·성수동과 마찬가지로 동명동 일대에서도 옛 건물의 특색을 살려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시도들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고급 주거가 밀집된 곳이다 보니 대체적으로 주택의 규모가 커 카페와 식당으로 공간을 개조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큰 자산들이 많고 부촌이다 보니 전반적으로 동네가 쾌적한 느낌을 준다.

회장·군수 살던 저택이 브루어리·게스트하우스로
과거 구례군수가 살던 집을 인수해 만든 게스트하우스 ‘희재가’ /사진=고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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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구례군수가 살던 집을 인수해 만든 게스트하우스 ‘희재가’ /사진=고병기기자

아울러 주거 문화가 아파트로 빠르게 변하면서 유휴 공간으로 방치된 곳들이 늘어났고 한동안 부동산 가치가 저평가 받으면서 창업을 꿈꾸는 이들이 동명동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 같은 동명동의 변화는 길게 잡아도 10년이 채 안 된다. 처음에는 2000년대 초반 동명동에 형성된 학원가를 찾는 부모들을 공략하기 위한 카페와 식당들이 하나둘씩 들어서기 시작했지만 최근에는 자신만의 개성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드러내고 광주의 지역색을 찾기 위해 동명동으로 눈길을 돌리는 이들이 늘고 있다. 광주 로컬 맥주인 ‘무등산 브루어리’를 만들고 있는 윤현석 대표도 그중 하나다. 무등산 브루어리 양조장은 과거 광주 향토기업인 남광토건의 회장이 살던 집이었다. 윤 대표는 1963년에 준공된 후 20년 가까이 폐가로 방치된 집을 맥주 양조장으로 변화시켜 광주의 특색을 담은 맥주를 만들고 있다. 특히 최근 지역을 대표하는 로컬 맥주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무등산 브루어리는 여타 로컬 맥주들과 달리 유통을 하지 않고 동명동에서만 판매하고 있다. 외지인들이 광주를 찾는 이유를 하나라도 더 만들겠다는 생각에서다. 윤 대표는 “과거 광주의 브랜드 전략을 연구하면서 지역이 갖고 있는 자산들을 리서치했는데 광주는 우리 밀이 전국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지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때마침 무등산 브루어리를 시작하던 2017년께 수제 맥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었고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을 갖고 지역 농업과 연계된 양조산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동명동에서 ‘희재가’라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양희재 대표는 과거 구례군수가 직접 지어 살던 집을 매입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있다. 양 대표는 “동명동에서 카페나 식당을 여는 사람들은 단순히 장사를 하고 싶어 오는 사람들은 아니다”라며 “카페나 식당을 통해 자기만의 라이프스타일을 풀어보려는 이들”이라고 말했다.

회장·군수 살던 저택이 브루어리·게스트하우스로
과거 경찰서로 쓰이던 건물을 개조해 만든 식당./고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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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을 개조해 만든 카페 /사진=고병기기자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동명동도 여타의 뜨는 지역이나 상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젠트리피케이션과 같은 문제를 피해가기 어렵다. 또한 지금처럼 카페와 식당 같은 서비스업 중심으로만 성장할 경우 한계가 명확하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도 확인되듯 소비가 침체될 경우 즉각적인 타격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윤 대표는 “새로운 가게나 상권이 생기면 상대적으로 죽는 상권도 생긴다”며 “광주는 외부 유입이 많은 관광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주택 공간을 활용한 서비스업 창업뿐만 아니라 지역과 밀착된 형태로 여러 제조업이 기획되고 실행된다면 동명동의 경쟁력이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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