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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만4000명’
통계청이 지난 12일 발표한 2월 고용동향에서 사실상 취업을 포기한 청년(15~29세) ‘쉬었음’ 인구 숫자다. ‘쉬었음’은 취업자도 실업자도 아니다. 말 그대로 특별한 이유 없이 구직을 하지 않는 자발적 취업 포기자들이다. 일할 의지가 없다는 점에서 이력서라도 넣어보는 실업자보다 심각한 문제로 보는 이유다. ‘그냥 쉰’ 청년층 인구가 50만명을 돌파한 것은 2003년 1월 통계 작성을 시작한 뒤 처음 있는 일이다.
청년층의 쉬었음 인구가 역대 최대를 기록한 것을 두고 그들만의 잘못으로 몰고 가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정규직 위주의 경직된 노동 시장과 좋은 일자리 부족, 기업의 채용 환경 변화, 경기 침체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구조적 문제가 얽혀서 빚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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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기업들이 청년을 많이 뽑지 않고 있다. 한국경제인연합회(한경협)가 지난달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업의 61.1%는 상반기 신규채용 계획을 수립하지 못했거나 수립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구체적으로는 ‘채용 계획 미정’이 41.3%로 전년동기 대비 3.9%포인트 늘었고, ‘채용 계획 없음’은 19.8%로 2.7%포인트 증가했다. 채용 계획이 있는 기업 중에서도 지난해보다 채용 규모를 줄이겠다고 응답한 기업은 28.6%로, 늘리겠다는 기업(12.2%)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채용 규모를 유지하겠다는 곳은 59.2%로 조사됐다. 1년 전보다 채용 축소 기업은 1.8%포인트 늘어난 반면 확대 기업은 3.9%포인트 줄었다.
가뜩이나 뽑는 인원이 줄었는데 기업들이 경력자를 선호하는 현상이 강화된 점도 청년들을 어렵게 하고 있다. 한경협에 따르면 매출액 500대 상위 기업의 지난해 대졸 신규 입사자 중 28.9%는 이미 경력을 보유한 ‘중고신입’이었다. 이는 2024년의 25.7%보다 3.2% 포인트 늘어난 것이다.대기업들의 올해 상반기 대졸 신규채용 계획 인원 중 경력직 비중은 31.2%로 1년 전보다 3.1%포인트 상승했다. 경력직 채용 비율이 ‘50% 이상’인 곳도 23.8%로 같은 기간 15.7% 포인트 급증했다.
장주성 기획재정부 인력정책과장은 “기업의 수시 경력직 채용 경향이 확대되면서 신규 채용이 줄어들고 있다”며 “그에 따라 구직 기간이 증가하면서 구직이나 이·전직 기간에서 쉬었음에 편입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경향은 최근 좀 더 심해지고 있다”며 “예전에는 대학 졸업 하거나 구직 희망 시작 시기부터 8~9개월 정도면 취직 성공 했다고 하면 요즘은 1년 가까이 구직 기간이 늘어서 청년 쉬었음 인구도 증가하는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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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다보니 신규 채용시장에 나오는 졸업생들은 죽을 맛이다. 더욱 지난해부터 채용 시장에 나오고 있는 청년들은 흔히 ‘코로나19 학번’으로 불리는 20학번 이후 세대들이다. 코로나19가 한창 일 때 입학하거나 재학 중인 학생들로 제대로 된 학내 활동이나 외부 활동을 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상대적으로 인턴 경험도 부족한 편이다. 올해 수도권 대학을 졸업한 김 모씨는 “재학 중엔 코로나 때문에 학내 학동은 물론 외부 인턴 경험도 많이 쌓지 못했다”며 “토익과 학점을 올리는 데 최선을 다했지만 정작 취업 시장에 나와보니 기업들은 경력자를 원해 어떻게 해야할지 갑갑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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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청년층의 취업자 수와 고용률은 4년여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청년층 취업자는 355만 7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23만 5000명 줄었다. 2022년 11월부터 28개월 연속 ‘마이너스’다. 감소 폭은 2021년 1월(31만 4000명) 이후 4년 1개월 만에 최대다.
청년 고용률은 44.3%로 1년 전보다 1.7%포인트 줄었다. 이 역시 2021년 1월(-2.9%포인트) 이후 최대치다. 청년층 실업률은 7%로 2023년 3월(7.1%) 이후 2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제조·건설·도소매 업황이 부진한 것도 청년층의 고용률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이들 업종은 청년층의 취업 비중이 높은 편이다. 지난달 제조업에서는 취업자가 7만 4000명 줄면서 지난해 7월 이후 8개월째 감소세가 이어졌다. 건설업 취업자 또한 건설 경기 불황 등의 영향으로 16만 7000명 감소했다. 10개월 연속 전년 대비 마이너스다.
내수 부진이 계속되면서 도매 및 소매업 취업자 역시 6만 5000명 줄었다. 공미숙 통계청 사회통계국장은 “청년층 취업자 비중이 높은 게 제조업과 건설·도소매업”이라며 “이 업종이 부진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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