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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CJ(001040)가 인공지능(AI) 기반 휴머노이드 물류로봇 공동 개발에 나선다. 한때 선대 회장 간 재산 다툼으로 갈등을 겪었던 두 기업이지만 3세 경영 체제 확립 이후 서서히 화해의 길을 걷다 최첨단 미래 기술 분야에서 전격적으로 손을 맞잡았다. CJ는 지난해 신세계(004170)그룹과도 본격적인 협업에 나섰는데 삼성까지 협업 범위를 넓힌 것이다. 글로벌 불확실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기 위한 범삼성가의 ‘사촌 동맹'이 활발해지는 양상이다.
지난 17일 CJ대한통운(000120)은 삼성전자(005930) 자회사인 로봇 플랫폼 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277810)와 ‘AI·휴머노이드 물류로봇 공동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양 사는 이번 협약을 통해 물류 산업 특성에 최적화한 AI 기반 로봇 솔루션을 함께 개발해 상용화하기로 했다. 반복적이고 단순한 수작업을 대체할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중점을 두고 실제 물류 현장에 적용 가능한 혁신 기술을 구현하는 것이 핵심이다.
물류는 동일한 공정을 반복하는 제조업과 달리 매일 수많은 종류의 상품을 다루기 때문에 자동화가 어려운 산업으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일반적인 고정형 설비보다는 사람처럼 판단하고 동작하는 휴머노이드가 자동화를 위한 최적의 대안으로 꼽힌다. 휴머노이드는 설비에 맞춰 물류센터 구조를 변경할 필요가 없으며 수행할 수 있는 작업의 범위도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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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로보틱스는 협동로봇과 이동형 양팔 로봇, 자율이동로봇(AMR) 등 다양한 로봇 하드웨어 기술을 제공하고 CJ대한통운 물류 환경에 적합한 로봇 플랫폼을 개발할 계획이다. CJ대한통운은 실제 물류센터에서 로봇 적용이 가능한 수작업 공정을 발굴하고 테스트해 기술의 실효성을 검증한다.
CJ대한통운은 물류 작업을 사람처럼 스스로 판단하고 수행하는 ‘에이전틱 AI’ 기술 개발에도 나선다. 에이전틱 AI는 실시간 데이터 분석을 통해 자율적으로 의사 결정을 하는 고도화된 AI다. CJ대한통운은 이 기술을 통해 물류 전 과정의 자율 운영 체계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양 사는 올해 말부터 실제 물류 현장에서 로봇 실증 테스트에 돌입한다. 검증된 기술을 기반으로 주요 거점 물류센터에 순차 적용할 방침이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이번 협업을 통해 물류를 시작으로 제조와 헬스케어·서비스 등까지 AI를 결합한 휴머노이드 로봇 생태계 확장을 선도해나간다. 김정희 CJ대한통운 TES물류기술연구소장은 “단순한 자동화를 넘어 스스로 최적의 판단을 내리고 움직이는 AI 로봇을 물류 현장에 투입하는 국내 첫 시도”라며 “AI와 로보틱스의 융합을 통해 차세대 물류 패러다임을 선도하겠다”고 말했다.
레인보우로보틱스와 CJ대한통운 간 로봇 협력은 모그룹인 삼성과 CJ가 미래 핵심 산업을 놓고 연대하는 것이어서 재계의 관심을 모은다. 삼성전자는 로봇 사업 강화를 위해 지난해 말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을 기존 14.7%에서 35%로 높여 최대주주에 올랐다.
최근 AI와 로봇 등 미래 기술 분야를 두고 국내 반도체와 모빌리티·배터리 기업 간 활발한 짝짓기가 이뤄지고 있지만 삼성과 CJ는 눈에 띄는 움직임이 없었다. 2020년 삼성전자 벤처 조직 스타랩스와 CJ올리브네트웍스가 인공인간 ‘네온’ 사업 협력에 나섰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중단된 바 있다. 제조업 중심의 삼성과 식품·미디어 등 생활 문화를 주력으로 하는 CJ 간 접점이 많지 않은 탓도 있지만 과거 수천억 원 소송전으로 갈등을 빚었던 역사도 한몫했다.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의 장남과 3남인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과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은 ‘2세 경영’ 승계 과정에서 대립했고 생전에 화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2015년 이맹희 회장, 2020년 이건희 회장 별세를 계기로 사촌지간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조문하며 교류의 물꼬를 텄고 2022년 11월 이병철 창업회장 35주기 때는 경기도 용인 선영에서 양가의 만남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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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CJ는 지난해 신세계그룹과 손을 잡고 ‘사촌 동맹’을 본격화했다. 이재현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각각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손자, 외손자다. 두 그룹은 지난해 6월 ‘CJ-신세계 사업제휴 업무협약(MOU)’을 통해 유통·물류·식품 등 전방위 사업에서 협력 물꼬를 텄고 같은 해 7월 G마켓의 스마일배송 물류전담을 CJ대한통운이 맡으면서 협업을 개시했다. SSG닷컴은 2월과 3월에 각각 트레이더스 ‘당일배송’ 물량, ‘스타배송’ 물류도 CJ대한통운에 맡겼다. 양 사는 물류 외에도 CJ제일제당의 상품을 신세계에 선출시하거나 상품을 함께 기획하는 방식으로도 협업하고 있다. 쿠팡에 맞서는 동시에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중국 e커머스의 공세에 대응하려는 의도다.
재계에선 삼성과 CJ의 이번 휴머노이드 동맹을 기점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그룹 간 미래 사업 협력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CJ그룹의 바이오와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분야는 삼성그룹의 전자·디스플레이 등 정보기술(IT) 분야와 연결된다”며 “활발한 융복합 과정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