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000210)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빠진 여천NCC에 대해 ‘워크아웃(채권단을 통한 기업구조개선)’을 주장하며 공동 대주주인 한화(000880)그룹의 자금 지원 필요성을 일축했지만 이재명 대통령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까지 나서 석유화학산업 구조조정에 팔을 걷어붙이자 뒤늦게 자금 지원에 나섰다.
DL은 지난 14일 공시를 통해 자회사인 DL케미칼이 이사회를 열고 50% 지분을 보유한 여천NCC에 1500억 원을 대여하기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대여 기간은 20일부터로 자금은 여천NCC 운영 경비로 쓰일 예정이다. 앞서 DL케미칼은 여천NCC의 워크아웃을 밀어붙이려다 한화그룹이 이같은 사실을 공개하고 여론이 악화하자 11일 이사회를 열고 2000억 원의 유상증자를 단행하며 자금을 축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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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그룹은 유증 직후에도 여천NCC에 대한 지원을 완전히 결정한 것은 아니며 추후 회사의 자구책 마련 등과 관련해 공동 대주주인 한화그룹과 협의를 거쳐 지원 여부와 금액을 확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천NCC는 한화솔루션(009830)과 DL케미칼이 각각 50%씩 출자해 설립한 국내 에틸렌 생산 3위 업체다. 여천NCC는 원료 대금 결제와 임금 지급, 회사채 상환 등을 위해 21일까지 360억 원의 운영자금이 필요하고 이달까지 1800억 원의 자금을 추가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30일 이해욱 DL그룹 회장은 여천NCC 관련 긴급 경영회의에서 “내가 만든 회사지만 지금은 신뢰가 안 간다” 면서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져도 답이 없는 회사에 돈을 꽂아 넣을 수는 없다”고 한화 측 경영진에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의 뜻을 고려해 김종현 DL케미칼 부회장은 “여천NCC를 스크랩하겠다는 데 금융기관과 정부가 왜 반대를 하겠는가”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비판 여론에 밀려 DL케미칼이 증자를 통해 현금을 확보하고도 여천NCC 지원 결정을 미뤄왔지만 산업부 장관과 대통령까지 잇따라 나서자 결국 DL은 자금 지원을 결정했다. 김 장관은 14일 오전 한화오션 거제조선소를 방문해 “석유화학업계가 합심해 설비조정 등 자발적인 사업 재편에 참여해야 한다” 면서 “무임승차하는 기업은 범부처가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장관이 특정업체를 콕 찍어 말한 것은 아니지만 여천NCC 부실을 채권단에 떠넘기고 발을 빼려고 하는 DL그룹과 이 회장을 향한 경고장이란 것이 업계의 대체적 분석이다.
김 장관에 이어 이 대통령 역시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고 “석유화학 산업처럼 우리가 강점을 가진 전통 산업을 포기하면 안 된다” 면서 “관계부처는 종합 대책을 신속히 마련하고 관련 기업도 책임감을 갖고 동참해달라”고 촉구했다. 석화업계에선 DL그룹이 여천NCC가 조(兆) 단위 수익을 올릴 때는 엄청난 배당 수익을 챙겼다가 중국발 공급 과잉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손실이 커지자 ‘나 몰라’ 하는 모습에 정부가 강력한 우려를 표시한 것으로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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