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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한국 라이더들 사이에선 류명걸 선수님의 다카르랠리 출전이 큰 화젯거리였습니다. 한국인 최초 다카르랠리 모터사이클 부문 출전, 그리고 12일 간의 랠리를 마치고 무사히 완주까지. 다카르랠리 완주율이 50% 안팎에 그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단 한 번의 도전으로 쾌거를 거둔 셈입니다. 게다가 류 선수님은 이번 다카르랠리에서 총 40위, 소요시간 52시간 40분 26초로 아시아 선수 최고 기록까지 달성했습니다. 당연히 찾아가서 선수님 얘기 좀 들어봐야겠다 싶었습니다. 지난 2월 초, 정비, 숙식, 연습까지 다용도로 마련된 경기도 남양주의 개러지 ‘RYU27’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이분…류 선수님의 첫 인상이 심상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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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러지에 인기척이 나자마자 동네 길고양이 녀석이 쪼로로 달려오더군요. 류 선수님은 매우 익숙한 동작으로 사료와 물을 챙겨주셨습니다. 얼룩무늬라서 ‘젖소’라는 이름도 붙여주셨다네요. 류 선수님의 첫인상 게이지가 100%를 찍었습니다. 라이더인데 심지어 고양이 러버라면 100% 좋은 사람이니까요.
‘터프한 랠리스트의 고양이 사랑♥♡♡♥’도 매우 흥미로운 주제긴 하지만, 이날 방문은 신문 지면에도 나가는 다카르랠리 인터뷰를 위한 것인 만큼 애써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제가 나름 공부도 해 왔거든요. 저만 잘 몰랐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카르랠리는 1979년 프랑스의 모험가 티에리 사빈이 창시, 현재 F1·모토GP와 함께 세계 3대 모터스포츠 행사로 꼽히는 대회라고 하더군요. 특히 길도 뭣도 없는 사막에서 7,800㎞(2020 다카르랠리 기준)를 12일 동안 달려야 하기 때문에 훌륭한 선수, 튼튼한 바이크,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이 필수입니다.
워낙 만만치 않은 코스와 일정이다보니 창시자 티에리 사빈을 비롯해 지금까지 다카르랠리에서 75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2020 다카르랠리에서도 대회가 끝난 후 사망 판정을 받은 선수를 비롯해 2명의 선수가 사망했다고 합니다. 고인들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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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캠핑도, 바다수영도 싫어하는 실내형 인간이지만 류 선수님이 보고 왔을 다카르랠리의 풍경이 너무 궁금했습니다. 1월 5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출발해 1월 17일 결승점인 치디야에 닿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문답식으로 정리해 봤습니다.
▲하루에 몇 시간이나 달리는 건가.
=새벽 3시에 일어난다. 그리고 해지기 전 비박에 도착해 이르면 오후 6,7시쯤 어떻게든 눈을 붙인다. 쉬어야 하니까. 그런데 비박에는 다른 선수, 정비팀, 주최측 관계자들, 보도진들 3,000여명이 북적이는 데다 자동차·바이크 테스트 소음, 발전기 소음 등이 엄청나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수면제를 먹기도 한다. 먹는 문제는 주최측이 준비한 식사가 예상보다 괜찮았다. 경기 중간중간에 와츠스포츠(기흥인터내셔널의 자전거사업부)에서 후원해 준 에너지젤, 음료 등을 챙겨 먹었다. 와츠스포츠에서 하루에 필요한 칼로리와 식사량 등을 정리한 스케줄표를 만들어줘서 덕분에 빠르게 기력을 회복하면서 달릴 수 있었다.
(**비박은 최소한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텐트가 아닌, 거대한 강당 같은 숙소입니다. 선수와 관계자들은 종종 전갈이 기어다니는 바닥에 이부자리를 펴고 누워 잠을 청해야 한다고 합니다.)
▲심리적으로 고통스웠던 부분은.
:사실 육체적 고통이 심해서 심리적인 고통은 상대적으로 덜하긴 했다. 그런데 사막 한 가운데서 혼자 달리다 보면 넘어져서 다치는 상상, 구조 못 받아서 죽는 상상을 하게 된다. 다카르랠리는 출전하기에 앞서 “대회 중 사망시 본인의 책임으로 한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써서 낸다. 게다가 이번 다카르랠리 7일차에 선수 한 분이 돌아가셨다. 그런 공포를 대면하니까 느낌이 남다르다. 척박한 환경에 물리적으로 고립된 상태에서 맞닥뜨리는 그 공포가 너무나 실제적이었다.
▲코스 지도는 당일 아침에야 배포한다던데, 길 잃어버리기 십상인 것 아닌가.
=다카르랠리 다수의 우승 경력을 지난 토비 프라이스 선수조차 길을 잃고 헤맬 정도다. 이건 몽골 랠리 때 받은 지도(아래 사진)인데 코스의 지형지물이 간략히 표시돼 있어서 이걸로 길을 찾는다. 중간중간 아파트만큼 큰 바위 등등의 랜드마크도 있긴 하다. 최고속도 150~160㎞로 달리다 길을 놓치는 경우도 있다. 코스 내내 제대로 가는 것 맞나 의심스럽긴 하지만 제대로 맞추면 정말 기분이 좋다.
랠리에 참가하는 바이크에는 GPS칩이 이중삼중으로 부착돼 있다. 말도 안되게 코스를 이탈하는 선수들이 많고, 사막에도 크레바스라든가 평지처럼 생긴 낭떠러지처럼 위험 요소가 많아서다. 주최측에서 선수들의 위치를 모니터링하다 잘못 빠지면 위성전화를 걸어온다. 제대로 된 지도도, 스마트폰도 없는 곳에서 원초적인 인간의 감각을 활용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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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전에 완주를 달성한 데다 아시아 최고 기록까지 세웠다. 특히 11구간에서 한꺼번에 50명을 제쳤는데, 비결은.
=퇴직금, 전세보증금까지 2년 동안 모든 걸 쏟아부었기 때문에 “완주를 못하면 분명히 다음에 또 도전하겠다는 생각이 들 테니 이번 랠리에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 잘해도 못해도 이번에 끝낸다”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했으니까 정신 차리고 완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11구간은 300㎞가 사막이었는데 난 사막 경험이 많지 않아서 처음엔 쫄았다. 사막은 높낮이도 심하니까 긴장을 많이 했다. 다른 선수들이 마구 추월하더라. 그래도 처음에는 천천히 달리다가 적응하고 나서 점점 속도를 올렸다. 누구를 따라잡는다는 생각보다는 내 페이스대로. 날 추월했던 선수들은 초반에 빨리 달리다가 후반에 체력이 떨어졌는데, 난 내 페이스대로 잘 관리하면서 끝까지 집중력을 발휘했기 때문에 막판에 50명을 추월할 수 있었다. 다카르 챔피언이나 엘리트클래스(프로급) 선수들에게 조언을 구하면 공통적으로 해주는 말도 비슷하다. 다들 “지도 잘 봐라”, “꾸준히 일관성 있게 달려야 한다”고들 말해주더라. 하루가 아니라 12일 내내 달려야 하는 대회니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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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다카르랠리의 꿈을 가졌고, 어떻게 준비했나.
=오프로드 모터사이클을 좋아해 2000년대 중반부터 국내외 대회에 참가하고 때때로 우승도 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다카르랠리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갔다 온 게 믿기지 않는다. 처음 결심하게 된 건 2016년 몽골랠리 구간우승(여러 스테이지 중 특정 스테이지 우승)을 했을 때다. 다카르랠리를 완주한 몽골 선수보다 더 빨리 그 구간을 통과하고 났더니 “나도 다카르에 나갈 실력이 됐구나” 싶었다. 2017년에는 몽골랠리에서 한국인 최초로 전체 우승했다. 그래서 아예 2020년으로 못박고 준비를 시작했다. 일과 훈련을 같이 하면 이도저도 안될 것 같아서 2018년 2월에 10년 다닌 회사, KTM을 그만두고 올인했다.
사이클, 필라테스, 수영, PT 등으로 기초 체력을 다졌다. 그리고 하루종일 바이크 연습도. 하루 수백 ㎞씩 달리는데 화장실이 급하면 안되니까 가기 전에 1년 넘게 배변 훈련도 했는데,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바로 화장실로 가는 식이었다. 상위급 선수들은 랠리 중에 아예 소변주머니를 차고 달린다더라. 옷 벗었다 입는 몇 분도 아까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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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르랠리 참가에 든 비용은 얼마나 되나.
=거의 3억원 정도. 단순히 다카르랠리 참가비와 비행기표로 끝나는 게 아니다. 다카르랠리에 출전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다른 랠리 출전 경험이 있어야 하고, 멕시코 랠리만 해도 한번 다녀오는 데 수천 만원이 든다. 그리고 전지훈련 비용, 훈련 기간에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비용까지. 바이크는 후원사를 못 찾아서 결국 체코의 랠리팀 ‘클림치브’에서 빌렸다.
▲처갓집양념치킨 등에서 어떻게 후원을 받게 됐는지 궁금하다.
=(정 작가)처갓집은 오프로드 바이크 동호회의 한 사장님이 개인 차원에서 후원해주셨다. 2018년부터 국내 30대 기업, 유럽에 제품 수출하는 업체들을 중심으로 후원 제안서를 보냈는데 다 거절당했다. 답조차 안 준 곳도 수두룩하다. 2019년에 다카르랠리 참가비를 1차 송금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내 사진작품을 팔아서 냈다. 뒤늦게 출전 소식을 접한 모 수입사 대표가 “명색이 대한민국 최초인데 이럴 수가 있느냐”고 오히려 본인이 자존심 상해하면서 후원금을 보내주셨을 정도다. 홍진HJC에서도 헬멧, 후원금을 주셨다.
난 류 선수가 성공할 거란 확신이 있었으니까 도왔다. 완주하면 한국 최초, 못해도 영화 ‘쿨러닝’처럼 얼마나 애잔하냐. 우린 김한봉 선수와 쌍용차가 한국 최초로 다카르랠리 자동차부문 출전했던 걸 보고 자란 ‘다카르 키즈’인데, 막상 어른이 되고 나니 돈 안되는 일은 무조건 가치 없는 일로들 치부하더라. 돈 안돼도 가치 있는 일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의미있는지 증명하고 싶었다.
▲기업 후원을 받는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의 차이는.
=기업후원 안 받는 선수들은 스스로 할 일이 너무 많다. 정 작가는 다카르랠리에 동행했지만 잠잘 곳이 마땅치 않아 비박에서 이곳저곳 껴서 잤다. 식사, 빨래 등도 선수가 다 알아서 해야 한다. 그나마 바이크 정비는 클림치브 팀에서 대행해줬다.
(정 작가)중국 선수들이 자동차 부문에 3명 출전했는데 , 돈이 많으니까 심지어 밥차까지 데려와서 중국요리 해 먹더라. 정작 장비도, 도구 다루는 모습도 좀 어설펐고 자동차 성능도 모자랐지만 돈이 많으니까 온 거다. 그런데 그게 5년, 10년 축적되면 나중에 잘 하겠지. 손흥민 선수 부친이 한 인터뷰에서 “선수 하나 만드는 데 15년 걸렸다”고 했는데, 류 선수는 스스로 20년을 투자해서 만들어진 선수다. 그런데 우린 이 다음 선수가 없다. 모터사이클도 산업인데 한 산업의 넘버원 선수를 이대로 놔둬선 안된다.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다음 다카르랠리에 나갈 계획은.
=내가 클림치브에서 빌려 탄 바이크가 경매에 나와 있다. 바이크 가격이 3,200만원에 우리나라로 가져오는 물류비까지 한 4,000만원쯤 들 것 같다. 그걸 가져오려고 다카르랠리 사진집, 티셔츠 판매에 나설 계획이다. 다음 다카르랠리는 안정적인 후원이 없으면 못 나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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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선수님은 인터뷰 내내 담담하셨고 동시에 참 행복해 보였습니다. 인생을 건 도전에 성공한 이들 특유의 단단함이 느껴지더군요. 주변에서 “이제 뭐 먹고 살거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작 본인은 “뭐라도 하면 되니까 걱정 안 한다”고 합니다. 애초에 다카르랠리란 꿈을 품은 것도 “아파트가 목적인 삶은 행복한 삶일 수 없다”는 가치관에서 비롯됐기 때문일 겁니다. 다카르랠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무런 대가도 없이 발벗고 나서주신 류 선수님의 지인들 이야기, 류 선수님을 전폭적으로 응원해 주셨다는 예비 배우자님(올 3월 결혼 예정이시랍니다!!!) 이야기까지 듣고 나니 저까지도 마음이 푸근해졌습니다. 여전히 국내 모터사이클&모터스포츠 시장은 척박하지만, 앞으로는 응원의 목소리가 더 커지리라 기대해 봅니다.
/유주희기자 ginge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