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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비와 푸르매, 승표와 현빈, 에스힐드와 레오를 안다고 답한다면? 더 이상 나이를 숨기기는 어렵다. 요즘 드라마 등장 인물이 아니라 90년대 여학생들을 설레게 했던 순정만화 대표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쩌랴. 이름을 듣는 순간 이미 저절로 올라가버린 입 꼬리를 억지로 끌어내릴 수 도 없으니 말이다.
순정만화를 보며 울고 웃었던 ‘그 시절 소녀들’을 위한 책이 나왔다. 2015년 에세이 ‘어쩌다 어른’에서 어린 시절 만화광이었노라고 일찌감치 고백한 이영희 작가의 신작 ‘안녕, 나의 순정’이다. 저자는 순정만화를 유치한 심심풀이용이라고 평가절하하는 세간의 시선에 반발하면서 순정만화 팬들의 추억 여행 길잡이를 자처한다.
책에는 황미나, 신일숙, 김혜린부터 이빈, 한승원, 이은혜, 한혜연, 박희정, 강경옥, 유시진, 문흥미, 이미라, 나예리, 천계영, 박은아에 이르기까지 1980~2000년대 한국 순정만화 부흥기를 이끌었던 작가들의 대표작 15편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야기 중간 중간 실제 만화 컷도 등장한다.
저자는 세간의 오해와 달리 순정만화에는 비현실적으로 잘생긴 청춘 남녀의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만 담겨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마냥 착한 여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주인공, 내면의 분노를 태우면서 권력을 향해 불꽃처럼 내달리는 여인도 나온다고 소개한다.
만화에 얽힌 저자의 어린 시절 추억담은 독자들의 공감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밤 9시가 되면 착하게 꿈나라로 가야 했을 나이에 ‘굿바이 미스터 블랙’을 몰래 봤다고 고백한다. 반전 묘미가 있는 ‘인어공주를 위하여’ 완결편을 못 본 상황에서 친구에게 기습 스포일러를 당한 후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고 추억한다.
이제 어른이 된 소녀들은 어린 시절 그토록 꿈꿨던 순정 만화 주인공 같은 인생은 못 살아보고 시트콤 주연도 아닌 조연 같은 경험만 반복한다며 한탄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저자의 말처럼 그 시절 소녀들의 추억 만큼은 영원히 아름답다. 물론 지금 삶 자체도 더 없이 소중하다. 1만6,000원.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